민주를 다시 보게 된 건, 정말로 우연이었다.
그것도 고요하고 조용한 우연이 아니라,
가슴을 한순간에 뛰게 만드는 강렬한 우연.
그날은 평범한 오후였다.
태풍은 강의실에서 나오며 동아리방으로 향하던 중,
후배 하나가 장난스레 어깨를 툭 쳤다.
“형! 간호학과에서 미팅 들어왔는데, 할래요?”
“미팅?”
“네. 우리과랑 4대4래요. 간호과 누나들 쪽에서 먼저 연락 왔다던데요?”
처음엔 시큰둥했다.
요즘 사람 많은 자리가 그다지 편하지도 않았고,
학과 수업과 동아리 일만으로도 하루가 꽉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간호학과’라는 말이 마음을 살짝 흔들었다.
혹시…
혹시 그때 그 무대 위의 그녀도,
민주도, 올까?
별다른 기대는 하지 말자며 고개를 저었지만,
입에서는 생각보다 빠르게 대답이 나왔다.
“할게.”
그리고 마침내, 미팅 당일.
약속된 술집에 도착하니 친구 세 명이 벌써 와 있었다.
주선자 역할을 맡은 후배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태풍은 어색한 웃음으로 자리에 앉았다.
“설레냐?”
“아니, 그냥… 궁금해서.”
술잔이 한두 잔 비워지고,
자리에는 어느새 웃음과 수다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입구 쪽에서 문이 열리고,
간호학과 주선자인 듯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그녀의 뒤를 따라
네 명의 여학생이 줄지어 들어왔다.
태풍은 그 순간,
숨이 멈추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무대 위에서 수화를 하던,
흰 셔츠와 조용한 눈빛을 가진 그 소녀.
민주였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들어왔고,
다른 여학생들과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이팅게일 선발대회에서 봤던 다른 후보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
태풍은 잔을 들고 있던 손이 살짝 떨리는 걸 느꼈다.
정말이었다.
민주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
하지만 그녀는 태풍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이름을 교환하는 시간.
민주가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김민주예요.”
다른 친구들이 “예쁘다” “이름 기억난다”라며 웃었고,
태풍은 그냥 조용히 잔을 들었다.
그 이름을 마음속에서 이미 수십 번 되뇌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믿기지 않았다.
민주는 여전히 조용했고,
대화보다는 듣는 쪽에 가까웠다.
어쩌면 그게 더 마음에 남았다.
화려하지 않은 존재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이 가는 사람.
그녀가 웃을 때,
손끝으로 잔을 돌릴 때,
작게 “응” 하고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태풍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태풍은 술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민주는 자리 맞은편에서 친구들과 가볍게 웃고 있었다.
크게 떠들지는 않았지만, 조용한 미소와 리액션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형, 왜 이렇게 조용해?”
옆에 앉은 친구가 태풍의 팔꿈치를 툭 쳤다.
“너, 혹시 마음에 드는 사람 생겼냐?”
태풍은 대답 대신 웃기만 했다.
그 말이 농담이라 다행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신조차도 이 감정이 ‘관심’인지 ‘기억’인지 헷갈리고 있었으니까.
주선자 역할을 맡은 후배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게임을 제안했다.
“자, 그럼 다 같이 ‘밸런스 게임’ 한 판 어때요? 가벼운 걸로!”
“단둘이 여행 VS 단둘이 자취방 영화 보기!”
“첫눈에 반한 사랑 VS 오래 알고 지낸 친구에서 연인!”
질문이 오갈 때마다 웃음이 터졌고,
서로의 성격과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민주였다.
주선자가 물었다.
“민주 누나,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해요!
과거에 잠깐 좋았던 사람 VS 지금 별 감정 없지만 안정적인 사람?”
민주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고 웃더니, 망설임 없이 말했다.
“과거에 좋았던 사람.”
그 말에 순간,
태풍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멈췄다.
민주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지금 감정 없으면... 오래 못 갈 것 같아서요.”
다른 친구들은 “오~ 감성파다”, “멋있다”며 리액션을 했지만,
태풍은 그저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찌릿했다.
그녀는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그 말은 단지 게임 속 하나의 선택이었을 뿐일까?
그 후로도 몇 번의 건배와 게임이 이어졌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어느 순간,
민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태풍은 물을 마시려다 우연히 눈을 마주쳤다.
눈빛이 살짝 머무는 듯하더니,
민주는 천천히 시선을 떼고 문을 열고 나갔다.
태풍도 잠시 뒤,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스럽게 가게 바깥으로 나가자,
민주는 담벼락 쪽에서 조용히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녀는 태풍을 보자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술은 괜찮아요?”
태풍이 먼저 물었다.
민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많이는 안 마셨어. 그냥… 공기 좀 마시고 싶어서.”
그 둘 사이엔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태풍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예전에 너랑 같이 봉사 다녔어.
혹시 기억하려나 해서.”
민주는 잠시 멈칫하더니,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대성고?”
“응. 대성고.”
민주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눈을 깜빡였다.
“미안해. 내가 사람 얼굴 잘 기억을 못해서…”
“괜찮아. 나도 말할까 말까 고민했었거든.”
민주는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어딘가 슬프면서도 편안했다.
“고등학교 때 기억은… 솔직히 좀 많이 지운 것 같아.”
“응. 그럴 수도 있지.”
그 말에 태풍은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머물러 있었는데,
그녀는 이미 떠나버린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화 하나만으로도
그는 조금 더 그녀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어쩌면,
민주 역시 그를 완전히 모르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고
작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웹소설 링크 :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ovelId=1189209&volumeNo=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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