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 이후,
민주는 마치 세상에서 사라지듯 자취를 감췄다.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
“고맙고, 미안해.”
그 짧은 인사를 끝으로, 그녀는 사라졌다.
연락처도, SNS도,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태풍은 한동안 매일 그녀의 이름을 검색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과거의 메시지함을 열어보기도 했고,
그녀가 자주 앉았던 버스 정류장을 향해 몇 번이고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민주와의 인연은
시간 속에 조용히 파묻히는 듯했다.
그렇게 몇 해가 흘러,
대학교 입학.
낯설고 복잡한 공간에서
태풍은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학교 방송동아리 모집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기계를 다뤄본 경험은 없어도 괜찮습니다.
행사 기획, 음향, 영상 편집에 관심 있는 분 환영!’
화려한 무대에 서는 건 부담스러웠지만,
무대 뒤편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일은
이상하게도 끌렸다.
태풍은 그렇게 방송동아리의 일원이 되었다.
조용히 장비를 다루고,
사람들 틈에서 뒷모습을 지켜보는 일.
그건 그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학교 축제 준비가 한창이던 늦은 봄날.
태풍은 무대 음향 장비를 세팅하고 있었다.
학교 곳곳엔 화사한 천과 조명이 달렸고,
무대 주변엔 학생들의 기대와 소란이 가득했다.
그날 오후, 간호학과 주최의 ‘나이팅게일 선발대회’가 열렸다.
후보들이 하나둘 무대에 올라
노래, 춤,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었다.
“다음은 5번, 김민주 학생입니다!
장나라의 ‘나도 여자랍니다’에 맞춰 수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고 하네요!”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리는 순간,
태풍의 손에 들린 마이크 케이블이 멈췄다.
김민주.
그 이름은,
기억 속에 먼지처럼 가라앉아 있던 무언가를
갑작스레 뒤흔들어놓았다.
음악이 시작되었고,
무대 위로 누군가 조용히 걸어나왔다.
흰 셔츠와 검은 치마.
단정하게 묶은 머리.
낯익은 옆모습과 조용한 눈빛.
민주였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음악에 맞춰,
천천히 손짓을 시작했다.
“나도 여자랍니다—…
그대곁에 있을때면 부드럽고
약해지는 마음”
태풍은 숨을 멈춘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민주는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표정은 긴장되어 보였고,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예전보다 밝아보였다.
하지만 그 손짓은,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민주의 시선이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석 쪽을 스쳤다.
태풍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삼켰다.
혹시라도 그녀가 자신을 알아볼까,
혹시라도 다시 마주치게 될까—
그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채
가슴이 요동쳤다.
그러나 민주의 시선은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태풍을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보았더라도
기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얼굴 중 하나.
그저 행사를 돕는 동아리 학생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풍은 그 자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미세한 손놀림,
수화 하나하나에 담긴 감정이
그의 가슴을 조용히 흔들었다.
그녀가 왜 수화를 하게 되었는지,
왜 그런 표정으로 무대에 섰는지—
태풍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무언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민주의 내면을 감싸고 있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자,
민주는 무대 아래로 조용히 내려갔다.
환호와 박수,
후보들의 응원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태풍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마이크가
이제는 무게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하나만이 선명했다.
무대 위에 섰던 그녀.
민주.
그날 이후로 태풍의 마음 어딘가에서
멈춰 있던 무언가가
조용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야할까....?
웹소설 링크 :
http://novel.naver.com/challenge/detail?novelId=1189209&volumeNo=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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